26/10/04
저녁 8:30 소등타임도 내 저녁잠을 이기지는 못했다.
동생들의 말로는 8시에 누워서는 그대로 잠들었다고.
그렇게 잠들고는 여러 꿈을 꾼 것 같은데 새벽 3시 정도 잠에서 깼다.
당연히 산장은 추웠고 패딩에 이불을 덮고 자기는 했지만 한기는 그대로 전해졌다.
머리맡에 있던 작은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올려다 보니 하늘은 맑고 별들은 가득했다.
누워서 뒤척이며 5시가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5시가 다가오면서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카메라를 챙기고 나가기 전에 화장실 가는길에 본 창밖.
어제의 비 영향인지 고도가 높아서인지 이제껏 못본 운해가 깔려 있었다.
파타고니아 로고 처럼 맑은 하늘에 북알프스의 산맥 드러나 있었고,
너른 개활지에 가깝고 먼 산의 실루엣이 너무 멋진 순간이었다.
먼저 나와계셨던 산장아저씨와 어제 저녁시간에 만난 교토에서 오셨다는 일본인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멀리 보이는 산의 이름들과 위치를 설명해주셨다.
어제부터 이 산에 있는 모든 일본인들은 우리를 걱정해주고 챙겨주고 있었고 아침까지 이어졌다.
해가 점점 올라오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고 운해도 선명해졌다.
날씨가 좋아질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까지 맑을거란 예상은 없었는데.
사진 찍느라 정신없던 차에 아침이 준비되었다는 산장 스태프의 외침이 있었다.
해 올라오는 것만 보고 들어가서 아침 먹는걸로.
해는 곧 올라왔고 서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멀리 보이는 남알프스 산맥은 바다 위에 섬 같았고, 날씨가 쾌청하고 구름이 없는 날은 후지산도 보인다고.
아침 먹으러 오지 않는 우리 때문에 산장 직원분은 다시 나오셨고,
더 이상의 민폐를 줄 수 없어서 산장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위치와 정상가는 길을 설명해주셨다.
다시 따뜻한 코타츠에 앉아서 아침을 기다리는 중.
전날 급하게 출발하고 근처에 편의점도 없는 깡시골이라 간식도 못챙겨서 왔다.
아침은 일본 가정식, 가정식을 별로 좋아하진 않아서 료칸 여행가도 날계란에 밥을 비벼먹고 했는데.
이 날의 아침은 남김없이 먹었다.
산장에서 40분 정도의 길에 있는 연못을 보고 다시 돌아와 정상을 찍고 내려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얼른 채비해서 나가는 걸로.
아쉬운 마음에 떠나는 순간까지도 사진을 계속 찍는 중.
일본 하늘은 언제나 한국보다 맑지만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더 깨끗했던.
40분 정도를 내려가고 올라가야 호수를 볼 수 있다.
어제 기상이 좋았다면 가야 했어야 했던 길.
왜 이제서야 다들 말렸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양 옆 봉우리 사이에 있는 완벽한 바람골.
비바람을 피할 곳도 없는 뻥 뚫린 곳이라 여기를 지났을 생각을 하니 멈추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가져간 하이커워크샵과 타카오 마운틴 백.
이 조합이 괜찮은 거 같다.
가볍고 자주 빼야 할 것들은 타카오에 넣고 나머지는 백팩에 넣고.
(인스타그램 둘러보세요, 하이커워크샵은 서플라이에서도 판매중입니다.)
2번째 필름개인컷.
첫 롤을 다써서 중간에 필름을 한번 갈아끼웠는데,
집에 있던 언제 산건지도 모르는 필름을 가져갔더니 현상할때 필름 점막이 다 묻어나왔다.
덕분에 현상기계 약품을 다 빼고 세척하고 다시 채우는 일까지 가버린.
사진에 스크래치도 생기고 했는데 분위기는 더 좋다.
예전 파타고니아 화보집에서 보던 그 색감으로 나온 듯.
그리고 행주맨의 사진은 자업자득으로 핀이 나갔다.
같은 곳에서 디지털로 촬영한 사진인데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후보정으로 만진다고 해도 완벽한 필름룩을 내기는 어려운 듯.
확실히 소형과 중형의 차이도 있는 것 같고.
기회가 된다면 브랜드 화보를 필름으로 촬영해봐도 재밌겠다.
왔던길을 다시 돌아가고, 묶었던 산장도 지나고 유황연못을 지나야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정상까지는 또 1시간 정도.
그냥 내려갈까 하는 생각을 안한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째로맨의 강력한 의지도 있었고.
정상은 3,067미터.
한라산이 2,000이 조금 안되니까 그래도 가봤던 산 중에는 최고높이.
고산병이랄것도 없었고 사실 설악산이 더 힘들었다.
내가 가본 산 중에 최고는 설악산 오색코스.
다음주에 서북능선 가기로 했는데 벌써 무섭다.
전날 비 때문에 못봤던 풍경길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났고,
우리를 걱정해주시던 아래 산장 아주머니들은 아무 일 없이 돌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내려오면서 점점 더워지던 날씨와 전날 내린 비로 미끄러운 바닥에 하산길이 더 힘들었던.
결국 한 번 넘어지고 말았다.
하산하자 마자 바로 다시 나고야로 출발.
다음날 출국이라 시간이 없다.
빨리 이동해서 나고야 시내를 조금이라도 둘러보려면 빨리 가는 수 밖에.
꼭 가고 싶었던 샵이 2개 있었는데 2개 모두 수/목 휴무였다.
나고야에 도착해서야 휴무일을 알게 되었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부자 동생들은 캐피탈에 가서 쇼핑을 했고 의욕이 사라진 나는 구경만.
다들 좋겠다 젊고 돈이 많아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갔던 하리오 카페.
야외 드리퍼랑 몇 가지를 사고 필터커피를 마셨는데 나고야에서 마신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던.
다음날도 5시에 잠이 깨서는 7시부터 동생들을 괴롭혔고, 결국은 러닝하자고 끌고 나왔다.
행주맨은 도저히 못뛰겠다고 해서 자전거를 탔고 째로맨과 나고야성까지 달리기.
동생들은 우리 여행온거지 아시안게임 출전하러 온거 아니라고 불평했지만 달리고 나니 후련했다.
저녁 비행기까지 남은 짧은 시간동안 시내 구경을 하고 열차를 타고 공항으로 복귀.
짧고 굵었던 3박 4일.
11월에 예정된 요나고 바이크패킹이 더 기대되는.
재미없는 형과 같이 다녀와 준 형주와 재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