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18

은영이를 처음 만난 건 21년 겨울이었다.

혼자서 이주해 온 고성은 한동안은 신선하고 흥미있는 곳 이었고, 그렇게 여기저기 공간들을 기웃거리다 찾아간 루루흐는 특별했다.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차분한 음악 그리고 벽에 작게 붙어있는 메뉴들 옆에 다소곳하게 서서 주문을 받던 이가 은영이었다.

차분하게 설명을 마친 그녀는 곧 물 한잔과 주문한 메뉴들을 가져다 주었고 짧은 인사와 함께 돌아간게 전부였지만 그 순간 모든게 너무 완벽하게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테이블 한 켠에 적혀진 카페이용규칙을 보고는 ‘까다롭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모든게 이해되었다.

곳곳에 붙여진 작은 메모들과 은은하게 퍼지던 향 냄새와 먼지 하나 없던 화장실을 보고 나서는 이 공간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납득이 되었다.

그러면서 은영이와 안에서 커피를 내리던 용식이 두사람이 매우 궁금해졌다.

그렇게 만난 은영이와 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된건 몇년 후의 일이다.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 은영이는 먼저 웃으며 그냥 친구하자라고 말해주었고 그 제안이 너무 신났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만난 내 친구는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몇년의 투병을 마치고 12일 저녁에 고통없는 곳으로 떠났다.

도착한 장례식장에는 진곤형과 누나가 계셨고 상주로 나를 맞는 용식이와 인사를 나눴다.

나를 보고 있는 은영이의 사진은 정확히 1년 전에 내가 찍어 준 사진이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영정사진을 찍고 싶다는 말에 무슨 소리냐며 거절은 했지만,

그래도 내 친구가 찍어 준 사진을 가지고 있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찍어준 은영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모든게 허망한 느낌이었다.

진곤이형은 내가 모르던 20대 시절의 은영이와의 모습을 얘기해주었고,

그리고 나서 앉은 복도 의자 등 뒤에 있던 민정 누나는 은영이와 나눈 문자메세지를 찬찬히 읽어보고 있었다.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은영이를 기억하고 되뇌이는 모습에 더 커다란 슬픔과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고성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도 누나처럼 그간의 은영이와의 대화를 다시 하나씩 보면서는,

짧은 몇년의 다정했던 은영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공간에 은영이를 추억하는 글을 쓰는게 맞을까 라는 고민도 여러번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은영이를 조금 더 많이 추억하고 기억했으면 좋겠고 나 역시 은영이 사진을 보면서 한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내 친구들의 공간이던 루루흐는 다른 좋은 분께서 새롭게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한번도 새로운 루루흐에는 가보지 못했다.

바뀐 루루흐가 궁금하긴 하지만 내게는 오은영 박용식의 루루흐를 잊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루루흐와 은영이를 같은 기억으로 두고싶다.

무척이나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그녀의 친구였다는게 자랑이 될 정도로.

나와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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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