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03

선자령을 다녀왔다.

여름도 끝났고 백패킹을 한번 가고 싶던 찰나에 무작정 날짜를 잡고 인원들을 모았다.

안되면 혼자라도 가야지하고 나중에 한번 백패킹에 데려가 달라고 했던 동생에게 먼저 연락을 했는데,

그 동생이 알아서 척척 인원들을 모았다.

이제 서플라이의 모임 집합지가 되어버린 엑스포 주차장.

알아서 척척 참석한 동생들이 속속 도착하며 총 6명의 파티원이 완성되었다.

다들 자영업과 유부남으로 모이기 힘든 남자들의 모임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3/3으로 나누어 차 2대로 이동.

주최자로서 태연한척 했지만 출발전까지 날씨를 50번 정도 확인했다.

아이폰 날씨와 기상청 날씨 등을 비교해가며 강수확률과 바람까지.

애매하게 떨어지던 빗방울도 오락가락 하던 하늘도 변수였지만 오늘이 아니면 불가한 모임이라 진행하기로 했다.

안개가 자욱한 출발지에서 다들 반신반의 하며 배낭을 메었다.

첫 백패킹 하는 동생이 2명이나 있었고,

그래도 뭔가 첫 경험이 나쁘지는 않았으면 했는데. 시작부터 날씨가 심상치는 않았다.

선자령이야 워낙 날씨를 장담할 수 없는 곳이지만 잠깐이라도 하늘이 열리길 바랬다.

6명의 인원으로 백패킹도 오랜만이라, 짐이 한가득이다.

어렵게 갔는데 불편하고 아쉽게 오긴 싫어서 오버스펙 장비에 먹을거리를 많이 쌌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은 다 이런건가 했겠지만 이번 백패킹은 역대급 물량이었다.

가파르지 않은 숲길을 40여분 정도 가면 박지가 나오는 선자령은 가성비가 좋다.

따지고 보면 거의 15년 전, 나의 첫 백패킹도 선자령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장비들을 지고 형, 동생들을 따라 선자령에 갔다.

어느 것 하나 경량이지 않은 장비를 들고 온 나를 사람들은 놀라워 했고,

마침 그 날 박지에 부는 강풍에 내가 가져간 4인용 텐트에 모여서 겨우 저녁을 먹었다.

순발력, 센스 등과 거리는 멀지만 그떄부터 지구력, 체력은 좋았나보다.

정확히 40분 걸렸고, 박지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하늘은 뿌옇고 습했으며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도 비는 안오고 바람은 없었지만 선자령의 뷰를 보지 못하는게 아쉬웠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TP하나를 쉘터로 가져왔다.

예전에 호성이랑 요요랑 장비 얘기를 하면서 고가 장비에 대한 소회를 말한 적 있는데,

이젠 비싸고 좋은 장비를 쓰는 것 보다 가성비 있는 장비들로 채우는게 더 현명하고 멋있는거 같다는.

모임에 쓸 막 TP를 찾다가 10만원대에 중국산 제품을 찾았는데,

결제하는 순간까지도 내려놓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걸 사는게 맞을까, 차라리 좀 더 보태서 중고로라도 라는 좋은 걸 살까 생각이었는데.

시간적 여유도 없고 얼마나 쓸까 라는 생각도 있어서 바로 진행.

괜찮은 선택이었다, 좀 무겁긴 했지만 이렇게 가끔 쓰는 정도로는 충분한 듯.

처음 온 동생들은 장비가 없어서 여분의 내 장비를 빌려줬는데,

설치를 도와 주느라 뭔가 작업반장 같은 사진이 나왔다.

(사진들은 내 사진과 준석이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 섞여있다.)

쉘터 설치를 마치고 다들 각자 잘 곳에 위치를 잡고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와중에 상혁군은 가람양의 편지와 용돈을 받았다.

간만에 외출에 형, 동생과 잘 놀다오라는 가람양의 배려와 센스가.

(역시 쿄와 직원 출신은 다르다.)

대충 설치를 다 마치고 앉아서 먹는 맥주 한 캔으로 모든 힘듦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역시나 사람이 많은 만큼 바리 바리 싸온 음식들이 계속해서 테이블로 옮겨졌다.

그러다 갑자기 열린 하늘과 일몰은 모두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비 구름이 섞여있어서 낮게 깔린 구름이 잠깐 이었지만 너무 멋진 광경을 보여주었다.

다들 맥주 마시다 서로의 짝에게 사진 / 영상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던 순간.

그래도 동생들이 이 뷰를 잠깐이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주에 2-3회씩은 보는 동네 친구들이지만,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모두 나와 비슷한 고민과 힘듦을 가지고 있었고 다음에는 다같이 오자는 약속도 빠지지 않았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예상외의 고충도 확실하다.

여러 오해와 시기, 질투도 있지만 모두가 평화로운 속초, 고성이 되었으면.

잠깐의 일몰이었지만 모두를 잔혹하고 힘들게 한 여름을 위로 하듯이 사라졌고,

밤이 되면서 내리는 밤이슬과 함께 추위도, 날벌레들도 날아들었다.

그렇게 9시가 넘어가고 역시 난 빠르게 취침을 선언했다.

이제는 모두 익숙한 그러려니 하는 반응들이다.

2시, 4시에 깨서 뒤척이다가 5시에 결국 일어났다.

습도는 높았지만 꽤나 쾌적하게 잤다.

베러굿샵에서 렌탈해서 사용해 본 파고웍스 텐트는 좋았다.

싱글월에 1P는 처음이라 결로도 있고 조금 좁았지만 작은 패킹 사이즈와 무게, 컬러조합은 만족했다.

혼자 의자와 테이블을 두고 일출까지 기다리며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다.

점점 안개가 걷히고 멋진 운해를 보여주었다.

넓게 깔린 운해는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걷혀진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날씨 걱정을 엄청 했는데 습했던 날씨가 오히려 더 좋은 뷰를 보여주었다.

7시가 넘어가면서 작게 노래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하나 둘 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조금만 걷히면 단체사진 한장 찍고 철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단체사진을 찍고 정리를 하고 하산 시작.

성산에 있는 어릴적 부터 가던 순대국집에서 아침을 먹기로.

큰 추위도 없이 동생들도 만족하며 끝나서 다행이다.

다음 모임은 바이크 백패킹 or 제주 하이킹 or 태백 고원길 고려중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동행한 모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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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31